[집중인터뷰] (1) 이병헌의 새로운 얼굴
H.O.N.E.Y/News 2008/08/25 15:48 |[집중인터뷰] (1) 이병헌의 새로운 얼굴
자신의 다른 얼굴을 거울에서 발견하는 한, 배우는 지치지 않는다. 벌써 연기 경력 17년. 그러나 이병헌은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에게선 먼 길을 걸어온 자의 피로가 아직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다채로운 필모그래피에는 그 핵을 적시고 있는 정서가 있다. 아련하고 쓸쓸한, 그 어떤 기운. 그러니 시종일관 왁자지껄 신나기만 할 것 같은 신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보고 극장을 나오면서 쌉싸름한 뒷맛을 느꼈다고 해도 엇나간 감상은 아닐 것이다. 거기엔 이병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병헌을 만났다. 인터뷰 장소에 놓여 있던, 꽃을 든 이병헌 스탠디와 대형 액자 속에 담긴 이병헌 사진 사이에서, 배우 이병헌이 또박또박 입을 열었다. 막힘 없이 시원시원한 대답이었지만, 어떤 질문에도 섣불리 말을 섞는 성급함은 없었다.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이병헌. ⓒ 이동진닷컴-사진가 김보배 |
“일반적으로는 관객의 반응을 미리 예상할 수 있는 편이에요. 그런데 이 작품은 그렇지 않은 경우인 것 같습니다. 칸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처음 보고 나서 작품에 대한 만족도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칸의 관객들은 대부분 이 작품의 오락영화적인 본성을 만끽했는데, 저도 관객 입장으로 보면서 그런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거든요. 반면에 이 영화에 참여한 배우들 입장에선 근본적인 아쉬움 같은 게 있어요. 사실 김지운 감독님 원망할 사람이 한둘이 아닐 듯 한데(웃음) 너무나 고생하고 노력해서 찍은 연기가 최종적으로 영화에서 편집되어 빠져버린 게 무척 많았거든요. 정말 몇 년간 이 영화에 모든 것을 바쳤는데 작품 속에선 그림자만 잠깐 나온 경우도 있어서, 그런 분들에 비하면 전 행복한 푸념을 하고 있는 것이긴 해요. 그래도 저 역시 살짝 아쉬움이 들었던 게 사실이거든요.”
-구체적으로는 어떤 장면이 잘려나갔습니까.
“모든 배우들이 그런 아쉬움을 느끼고 있을 거에요.(웃음) 사실 잘려나간 양 그 자체는 일차원적인 것인데, 배우마다 각기 ‘이 연기만은 제발 살았으면 좋겠다’싶은 것들이 있게 마련이잖아요? 이 작품에서 제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으로 무척 맘에 들어 했던 표정 연기가 두 개 있었는데, 그게 다 빠졌어요. 이 영화의 러닝 타임이나 리듬을 고려할 때, 그 두 장면이 들어갈만한 자리가 영화에 없다는 감독님의 설명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아쉬운 것은 아쉬운 거죠.(웃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배우로서 저 자신은 이 영화가 처음 공개될 때 좀 자신이 없었던 듯 해요. 나도 내 연기에 대해서 100% 만족스럽지 못한데, 과연 보는 분들이 만족스러울까, 싶었던 거죠.”
-배우는 자신을 지지해주는 팬층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게 사실 아닙니까?
그런데, 이 영화를 통해서 아직 10대 관객들과도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셨을 테니, 기분이 괜찮으실 듯 한데요.(웃음)
“여행을 떠날 때 제일 기분 좋은 순간은 출발하는 자동차 안에서 신나게 음악 틀고 노래도 부를 때잖아요? 행복감의 크기로 보면, 정작 여행 가서 노는 것보다 막히면서 가는 차 안에서의 느낌이 훨씬 더 좋은 법이죠. 그러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는 ‘내일이 다시 월요일이구나’ 싶은 생각에 기분이 가라앉기 마련이잖아요. 갈 때와는 상반되게,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순간이 주는 우울한 느낌이 있어요. 그런데 여행을 자주 가게 되면, 아예 떠날 때부터 돌아올 때의 기분이 떠오른다는 거죠.(웃음) 처음 아이돌 스타가 되면 전국민이 나를 좋아해주는 것 같은 느낌에 무작정 좋기만 하기 마련인데, 이제 그런 기분은 전혀 아니라는 거죠. 제가 우리나라나 일본에서 팬 미팅을 할 때 이런 이야기를 몇 차례 한 적이 있어요. ‘저는 늘상 같은 자리에 서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원하시면 언제든 올라와서 야호를 외치고 쉬다가 내려가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다 또 저를 찾고 싶으시면 다시 한 번 산행을 하시면 되고요. 다만, 가급적 자주 오시고 오래 계셨으면 좋겠네요.’ 그런 게 제 마음입니다.”
-영화를 보니 스토리와 리듬을 포함한 모든 것에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무게중심은 확실히 ‘이상한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작품을 처음 보고 나서 김지운 감독님이 송강호씨를 편애했다는 생각이 혹시 들진 않으셨나요?(웃음)
“무척 많이 들었죠.(웃음) 강호 형 뿐만이 아니에요. 강호 형의 경우는 애초부터 시나리오 자체가 그쪽으로 맞춰져 있어서 예상을 했는데, 이 영화를 보니, 세상에, 정우성씨를 어쩌면 그렇게 멋지게 등장시킬 수가 있는 거죠?(웃음) 칸 영화제에서 처음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호텔에서 우리끼리 작은 파티를 했을 때 정우성씨와 강호형에게 계속 ‘두 사람은 좋겠다’고 투덜댔어요. 뭐,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거겠죠.(웃음)”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라고 아예 캐릭터의 성격이 제목에 박혀 있는 영화에서 ‘나쁜 놈’ 역할을 맡으셨습니다. 물론 영화를 다 보면, 그 세가지 성격이 서로에게 혼재되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지만, 이렇게 제목에까지 명시된 전형적 악당을 연기하시는 마음은 어떤 건가요. 이런 악역에게는 눈빛에서 손짓과 고개짓까지 구체적으로 요구되는 어떤 양식화된 전형이 있게 마련인데, 사실 배우들은 지나치게 전형적인 캐릭터는 좀 꺼리는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있었어요. 이 역을 하기로 결정하기 전에도, 만일 제가 악역을 맡아서 연기하게 된다면, 그 역할을 고스란히 표현해야 하는 배우인 저로서는 이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고 여기지 말고 연기해야겠다는 것이었죠. 그건 창이라는 인물 행동의 개연성을 생각하면서 연기하자는 생각이었어요. 저 자신 연기하면서 창이가 온전히 나쁜 놈으로만 비쳐질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어요. 진정성을 가지고 연기하면, 관객들이 창이란 인물을 나쁜 놈이라고 느낀다 해도, 최소한 그에게서 ‘나쁜 영혼’이 있다는 것까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할 수 있다고 봤어요. ‘나쁘지만 그래도 저 사람에겐 영혼이 있다’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이병헌씨의 연기는 그 결이 무척 곱습니다. 특히 멜로에서 그렇죠. 그런데,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보다 보니, 선 굵은 악역조차도 섬세하게 연기를 하시던데요?(웃음) 창이가 만길(류승수)의 손가락을 자르려는 장면을 보면, 흡사 맹수가 먹잇감을 찢어발기기 전에 잠시 갖고 노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만길이 ‘누구냐’고 물을 때 ‘나, 창이야. 박창이’라고 씩씩 웃으며 말하는 장면에서는 악마적이고도 과시적인 장난기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손가락을 자르려다 미끄러져 상대의 손을 잠시 놓쳤을 때 옆으로 고개를 돌리며 실소를 흘리는 모습도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그간 이병헌씨에게서 볼 수 없었던 얼굴들이었죠.
“저도 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런 연기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게 어떤 구체적인 연구를 거쳐서 만든 거라면 자세히 이야기해드리겠는데 말이죠.(웃음) 제 얼굴이 새로웠다면, 그건 이전까지 그런 얼굴을 보여줄 만한 배역을 연기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을 거에요. 배우는 연기할 때 특정한 기분을 계속 유지하려고 노력하죠. 그런데 그 시간이 길어지면 그런 기운이나 기분이 빠져나갈 것 같은 순간이 생기는데, 그러면 그때마다 추스려서 잡아당기게 됩니다. 그건 흔히 집중력이나 몰입 같은 말로 이야기되는데, 저는 기분이라고 표현해요. 그런 기분을 고스란히 갖고 있으면 배우들에게서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연기들이 튀어나오는 것 같아요.”
-‘나, 창이야, 박창이’라는 대사는 시나리오 그대로였나요?
“시나리오에는 ‘나, 박창이야’로 되어 있었어요. 원래는 그 대사를 좀 무섭게 말하는 듯한 느낌이었죠. 그런데, 그렇게 느낌을 좀 바꿔서 툭 내뱉듯 해본 거에요. 그리고 이름만 듣고도 사람들이 벌벌 떨 정도의 나쁜 놈이라면, 손가락 자르고 그러는 것은 그냥 일상 생활 같은 것 아니겠어요?(웃음) 그러니 누군가의 손가락을 자를 때 너무 진지한 것도 이상할 것 같았어요. 일제시대를 다룬 예전 우리 영화들을 보면, 고문 장면에서 순사들이 무척이나 여유롭잖아요? 당하는 게 아니라 안전한 위치에서 그냥 가하기만 하면 되는 처지니까요. 그런 상황을 떠올렸죠.”
-자신을 고용했던 김판주(송영창)를 죽일 때의 장면도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자신에게 총을 겨누는 그의 목에 전광석화처럼 몸을 돌려 칼을 꽂는 장면부터, 칼을 바닥에 흔들어 피를 떨어내는 장면과 금고를 열면서 땅콩 같은 것을 우적대며 먹는 장면까지 꽤 긴 신이었는데, 창이가 어떤 인물인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 했으니까요.
“개인적으로도 이 영화에서의 제 연기 중 가장 맘에 드는 신이었어요. 창이라는 인물이 지닌 잔인함에서부터 그 자신만의 유머 스타일과 액션과 철학까지, 모든 게 다 함축적으로 들어간 장면으로 제게도 느껴졌거든요. 그 장면을 찍을 때는 사실, 무척 긴장했어요. 그게 이 영화에서의 제 첫 촬영 장면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그 장면의 상황과 감정들은 그대로 느낄 수 있었기에, 자신감을 가지고 연기했죠. 현장에 음악을 그대로 틀어놓고 했는데, 그 신을 다 연기하고나니 제가 창이란 캐릭터에 성큼 다가선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금고를 열면서 땅콩 먹는 것은 이병헌씨의 아이디어였습니까?
“그건 감독님 아이디어였어요. 뭐 먹는 걸 되게 좋아하세요.(웃음) 배우도 누군가가 그런 설정을 해주면 연기할 때 유연성이 생기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그때 먹었던 것은 피스타치오였어요.(웃음)”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세 주인공을 담아낼 때 카메라의 앵글 사이즈가 각각 다릅니다. 이병헌씨는 이 영화에서 클로즈업을 가장 많이 받은 배우지요. 특히 정면 얼굴 클로즈업 쇼트가 상당히 많은데, 김판주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통해 “만주에서?”라고 반문하며 처음 등장할 때부터 정면 클로즈업 쇼트였잖아요? 입과 눈을 따로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담아내는 경우까지 종종 있었고요. 저는 이병헌씨가 클로즈업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연기자에게 클로즈업은 뭔가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보다 제어하는 게 더 중요한 앵글 사이즈가 아닌가 싶습니다. 클로즈업엔 사실 비현실적인 느낌이 있는데다가, 화면 가득 얼굴을 잡는 방식에서는 감정 표현에 대한 정보량이 너무 많이 담기게 되니까요.
“확실히 그런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영화의 클로즈업은 비현실적일 수도 있고,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쉽다는 점에서 조심스런 사이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반적으로 연기할 때 ‘기분’만 가지고 가는 편인데, 클로즈업에서 놀라는 연기를 한다고 해서 그걸 의식한 채 눈 주위 근육에 힘을 줘서 동그랗게 뜨고 입을 벌린다면, 그거야말로 기계적인 연기로 느껴질 겁니다. 내 기분이 놀란 감각을 유지하면, 눈을 크게 뜨지 않고 입을 굳이 벌리지 않아도 관객에게 곧바로 그 감정이 전달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 경우는 클로즈업이 아닌 쇼트에서 제 딴에는 구구절절 감정을 담아 연기하는데도 관객들이 잘 몰라주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고요. 그럴 때는 ‘오버 연기’가 필요하기는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걸 잘 활용하는 배우가 부럽기도 해요. 그런 분들은 카메라 앵글까지 다 섭렵한 배우들일 테니까요.”
-‘달콤한 인생’에서부터 김지운 감독님은 이병헌씨를 클로즈업에 담기를 좋아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만큼 배우로서 이병헌씨의 섬세한 표현력을 신뢰하는 것이겠죠.
“그게 감독님과 제가 함께 한 첫 작업이었죠. 사실 처음에는 서로 스타일을 완벽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함께 하는 건데, 감독님의 연기 주문이 워낙 까다로우세요. ‘이 장면에서는 쓸쓸한 표정이야’라고 말하지 않고, ‘쓸쓸하지만 나름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 같은 표정을 보여줘’라는 식으로 주문하셨죠.(웃음) 처음엔 속으로 ‘그렇게 잘 알면 직접 한 번 해보지’라고 되뇌기도 했어요. 그런데, 가끔 스스로 시범까지 보이시는데, 감독님이 정말 연기를 잘하긴 하더라고요. (웃음)”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이병헌. ⓒ 이동진닷컴-사진가 김보배 |
-저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보고 난 후, 이 영화에서 창이는 액션이 아니라 정서를 위한 캐릭터란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도원과 태구의 사연이 극중에서 제대로 이야기되지 않는데 비해서, 창이는 확실한 ‘과거’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죠. 어쩌면 창이야말로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순수’한 인간일 수도 있을 거에요. 삶에 대한 도원과 태구의 태도가 방법적인 측면에만 눈길이 가 있는데 비해서, 창이는 (최고가 되겠다는) 꿈을 추구하는 인물이고, 과거에 매여 사는 사람이니까요. 김지운 감독님의 작품엔 언제나 쓸쓸한 정서가 배어 있는데, 감독님은 이 영화에선 바로 그런 역할을 창이가 온전히 담아낼 수 있기를 바랐던 거라고 추측되는 거지요.
“정말 어떤 분들은 영화를 뚫어지게 보시는 것 같아요. 배우인 나만 느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지적하는 분들을 가끔 만날 때가 있는데, 그러면 짜릿해져요. 저는 그동안 인터뷰를 할 때면 언제나 ‘이 영화는 그냥 재미있게 보면 되는 팝콘 무비’라고 그냥 말해왔는데, 연기할 때는 사실 좀 다른 마음이었어요. 이 영화에는 저 혼자만 속으로 좋아하는 장면이 하나 있어요. 극 초반, 바퀴가 막 굴러가며 기차가 서려고 할 때, 기찻길을 막고 있던 창이가 한쪽에서 다른 한쪽을 바라보는 장면이죠. 그게 대사도 없는 쇼트인데, 창이가 갖고 있는 정서가 그 짧은 장면에 잘 심어져 있는 것 같아요. ‘달콤한 인생’에서도 저만 속으로 좋아한 장면이 하나 있었어요. 보스의 애인인 희수(신민아)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지 알아보려고 미행하는 동안 거리에서 홀로 오뎅을 먹는 장면이었죠.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그 장면이 그렇게 좋더라고요. 선우만의 쓸쓸함이 담겨 있어서요. 그런 장면들이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연기하는 입장에선 무척 의미가 클 수도 있거든요. 창이가 종반부에서 죽을 때도 이게 어차피 오락영화인 이상,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할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도 촬영장에서 연기할 때는 이 장면의 느낌이 왠지 슬프게 나올 것 같았죠. 그런데, 칸 영화제에서 그 장면을 보면서 ‘감독님이 전혀 슬프지 않게 찍었구나, 진짜 오락영화로 찍었구나, 나 혼자만 느낀 감정이었구나’ 하고 느꼈죠.(웃음) 그러다가 이런 대화를 나누게 되면 흠칫 놀라게 됩니다.”
-저는 이병헌씨의 연기가 감성이 무척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배역에의 몰입 때문에 작품을 끝낸 이후의 배우 상태가 걱정되는 경우는 아닌 것 같아요. 예민한 연기를 하시지만 배역으로부터 최소한의 거리를 유지하는 스타일이라고 할까요. 제게 그건 이병헌씨의 배우로서의 본능인 것처럼 느껴져요.
“그건 기본적으로 연기 스타일의 문제인 듯 싶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배우로서 기본적인 능력의 문제일 수도 있겠죠. 최민식씨나 전도연씨의 연기를 보면,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배우가 배역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싶은 걱정이 들죠. 연기하시는 모습을 보면 마치 그 인물로 지금도 살고 있을 것 같은 강력한 몰입도를 보이시잖아요. 그 캐릭터가 극중에서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면 촬영 당시에도 심적으로 무척 힘들게 사는 것 같고요. 그런 걸 보면 사실 부러운 측면이 있어요. 제가 대학원 시절 잠시 준비했던 논문이 바로 ‘연기에서 가장 이상적인 이성과 감성의 비율은 얼마일까’에 대한 것이었어요. 배우로서 그게 정말 궁금했거든요. 저는 아무리 몰입을 한다고 해도 이성은 살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성이 없다면 그 순간부터 연기가 아니니까요. 이게 좀 극단적인 예가 되긴 하겠는데, 100% 감성으로만 하는 연기라면, 섹스 신에서는 진짜로 섹스를 하고, 살인 장면에서는 진짜로 사람을 죽여야 하는 것일 테니까요. 이성과 감성의 이상적인 조합 비율은 여전히 궁금해요. 그런데, 그건 제가 어떻게 연기를 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정말로 능력의 문제일 수도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저도 몰입 때문에 촬영장에서 힘들어 보고 싶어요. 물론 저도 그런 연기를 할 때는 힘들죠. 하지만 그 장면이 끝나면 또 스태프들과 즐겁게 술을 마시며 대화도 하거든요.(웃음) 그 문제에 대해선 해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배우로서 그 비율이 예전에 비할 때 상대적으로 어떻게 변해온 것 같습니까. 이성 쪽이 좀더 보강되었습니까, 아니면 감성 쪽이 좀더 강화되었습니까.
“신인 때는 몰입해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그 감정 속으로 들어가려고 별 짓을 다해보는 순수함 같은 게 있게 마련이죠. 반면에 계속 연기를 하다 보면, 카메라가 어디에 있는지, 이게 화면에서 어떻게 비쳐질지에 대해 굳이 계산하려 하지 않아도 기계적으로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어요. 익숙해졌기 때문이죠. 그런데, 경력이 늘수록 상황이 그렇게 이성 쪽으로 점점 가까이 가게 되지만, 동시에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그런 경향을 알고 있는 저의 의지는 자꾸 거기서 벗어나려고 하게 돼요. 의지는 상황과 반대로 가려고 한달까요. 그렇기 때문에, 실제 제게 감성과 이성의 비율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웃음)”
-이런 상황이 있다고 한 번 가정해 볼게요. 이병헌씨가 너무나 좋아해온 할리우드 감독이 있어요. 그 감독이 신작 영화 캐스팅 건으로 누군가로부터 이병헌씨를 추천받은 후, 어떤 배우인지 직접 확인해보기 위해서 출연작 3편만 DVD로 보내달라고 했어요. 그런 요청이라면 이병헌씨는 어떤 작품을 보내실 건가요?
“그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전제해야 할 게 있을 것 같아요. 제 의지와 실제 현실은 좀 차이가 있다는 것이죠. 확실히, 할리우드를 주무른다고 하는 사람들에겐 경제 논리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상황에서 지금 제 미국 에이전트가 저를 누군가에게 소개하려 할 때, ‘달콤한 인생’이나 ‘공동경비구역 JSA’와 함께 빼놓지 않고 들고 가는 게 일본 도쿄돔에서 있었던 저의 팬 미팅 DVD에요. 처음엔 그게 무척 창피했어요. 그런 행사에서는 배우가 팬들을 위해 일종의 재롱 같은 것을 피우기 마련인데, 그걸 남들이 본다니 낯 간지러운 느낌이 있는 거죠.(웃음) 그런데, 그 DVD가 제대로 먹히는 게 현실이에요. 그걸 보여주면 당장 이 배우를 만나게 해달라는 사람도 많거든요.(웃음)”
-그 모든 것을 고려해서 3편의 출연 영화를 고르셔야 한다면요?(웃음)
“(엄지 손가락 두 개를 비비며 한참 생각한 후에)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중독’을 고르겠습니다.”
-두 작품은 예상이 됐는데, ‘중독’은 좀 의외네요?
“할리우드 감독에게 보내야 하는 것이니까요. 할리우드라면 이야기 자체에서 흥미를 느껴야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작품으로만 따진다면 저는 ‘번지 점프를 하다’가 더 좋아요. 만일 일본 감독이었다면, ‘중독’ 대신 ‘번지 점프를 하다’를 보낼 것 같습니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왜 빼셨습니까.(웃음)
“그 작품은 당연히 가장 큰 고려 대상이죠. 제 출연작 중 좋은 영화로 따지면 ‘달콤한 인생’과 함께 제일 먼저 꼽힐 수도 있을 거에요. 그렇지만 할리우드에 보여주려면 제 연기도 생각해야 하잖아요.(웃음) 일반적으로 배우는 세월이 흐르면 연기가 좋아지게 되니까 그런 부분을 고려한 결과입니다.”
'H.O.N.E.Y > News' 카테고리의 다른 글
| イ・ビョンホン、初のシングルは初の日本語曲 (0) | 2008/09/08 |
|---|---|
| [펌] 이병헌씨의 새로운 소식입니다. (0) | 2008/09/08 |
| BH엔터테인먼트에서 알려드립니다. (0) | 2008/09/05 |
| [집중인터뷰] (2) 배우 이병헌이 가는 길 (0) | 2008/08/25 |
| [집중인터뷰] (1) 이병헌의 새로운 얼굴 (0) | 2008/08/25 |
| 헐리우드판 '중독' 예고편 공개 (0) | 2007/11/2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