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천씨 기사의 오빠..
H.O.N.E.Y/News 2008/12/26 13:32 |[취중토크] 홍석천
일간스포츠 기사전송 2008-12-25 06:01 | 최종수정 2008-12-25 08:55
[JES 김범석]
'다르다'와 '틀리다' 사이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자맥질을 한 연예인이 또 있을까. 지금은 CF에서 게이가 나오고, '앤티크' '쌍화점' 등 동성애를 다룬 영화도 쏟아지지만 시계추를 8년 전으로 돌려보면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진다.
2000년 커밍아웃한 홍석천. 당시 "올 것이 왔구나" 했다지만 현실은 훨씬 더 냉혹했다. '뽀뽀뽀'를 시작으로 많은 프로에서 퇴출됐고, 동네 꼬마들에게까지 "호모 새끼"라는 욕을 들어야 했다.
"듣도 보도 못한 욕을 그때 다 먹어봤다"는 홍석천은 그렇게 한 달간 집에서 웅크린 뒤 죽을 각오로 세상과 부딪쳐 나갔다. 그 결과 그는 현재 이태원에서 레스토랑 네 곳과 바 한 곳을 거느린 외식업계 오너로 변신했다. 자산가치만 대략 30억원, 직원수도 40명이 넘는다.
"월급날이 너무 빨리 돌아온다"며 너스레를 떤 그는 "DJ를 뛰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까지 직원들 월급은 한번도 밀리지 않았다. 힘든 사람의 처지를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라며 웃었다.
▶먹는 장사 아무나 못 한다
홍석천의 휴대전화는 인터뷰 내내 10분 간격으로 불이 났다. 내일 가오픈하는 네 번째 레스토랑의 막바지 점검으로 분주했다. "실장님, 프레임은 내가 말한 빈티지 스타일로, 최대한 길게 해주고, 진밤색도 나쁘지 않겠다. 실장님 솜씨 내가 믿는 거 알죠?"
홍석천은 2002년 이탈리안 레스토랑 아워 플레이스를 시작으로 2006년과 2007년 각각 태국과 중국 레스토랑 마이타이, 마이차이나를 열었다. 지난 7월에는 두 가게 사이에 마이쏭 바를 추가했고, 뉴욕 스타일 레스토랑 마이첼시가 곧 문을 연다고 했다. 마이쏭 바는 며칠 전 한류스타 이병헌과 일행들이 송년회를 했을 정도로 문전성시였다.
이 정도면 외식업계 미다스의 손으로 불려도 손색 없겠다 싶었지만 홍석천은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더라"며 손사래를 쳤다. "여의도에서 동업한 가게가 하나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거기는 실패작이에요. 장사는 제법 됐는데 서류를 꼼꼼히 살피지 못해 결국 동업자와 헤어지게 됐지요. 괜찮아요. 그러면서 배우는 거죠."
홍석천은 최근 레스토랑 창업 경험담과 비법을 담은 '나만의 레스토랑을 디자인하라'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 맨 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남대문과 노량진을 헤집고 다녔고, 그 발품이 고스란히 피가 되고 살이 됐다.
-술은 잘 합니까.
"커밍아웃하고 한 달간 남산타운아파트에 숨어 살았는데 그때는 거의 매일 폭음했죠. 밖에 나갈 엄두를 못 냈으니까 집에서 후배들과 김치찌개에 소주만 마셨어요. 지금은 주량이 많이 줄었어요. 소주 다섯 잔, 폭탄주로 하면 세 잔 정도면 딱 좋아요."
-고약한 술버릇이 있나요?
"술버릇 나쁜 사람들을 되게 싫어해요. 나이트클럽에서 DJ로 일할 때 제 얼굴에 바나나와 포도를 던지는 취객이 있었어요. 한 잔 받으라고 하는데 사양하면 '네까짓 것도 연예인이냐'며 욕이 날라오죠. 저는 알딸딸하다 싶으면 그냥 자요. 대신 30분쯤 자고 나면 몸이 가뿐해져서 다시 술자리에 끼어요. 아직 간은 싱싱한 가 봐요. 재부팅이 잘 되는 걸 보면요.(웃음)"
-요즘 손님들이 가장 많이 얘기하는 건 뭡니까.
"아무래도 남자들은 경제 걱정을 많이 하고, 여자 손님들은 주로 건강과 연애, 자식들 얘기를 많이 하죠. 여자들이 저를 경계하지 않다보니 은밀한 부부 얘기까지 별의별 고민을 다 털어놓아요.(웃음)"
-경제가 어려우니까 '김밥장사나 해볼까' 벼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먹는 장사 우습게 생각하다가 큰 코 다쳐요. 이쪽 일도 3D 업종이거든요. 손님들 입맛과 취향이 각양각색이라 그걸 모두 만족시킨다는 건 불가능해요. 아무리 잘해도 '왜 이렇게 짜냐' '왜 맵냐'고 항의하는데 그걸 이겨내야만 성공하는 거죠. 김밥장사를 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허드렛일부터 배워야 해요. 전단지도 돌려보고, 주부습진 걸릴 정도로 설거지도 해보고. 허리 굽히는데 익숙하지 않은 월급쟁이들은 백발백중 망하는 게 음식 장사예요."
-석천씨 허리는 잘 숙여집니까.
"그럼요. 안 그러면 망하는데.(웃음) 처음엔 손님들 때문에 속상해서 주방에서 운 적도 여러번이에요. 퇴근한 주방장 대신 주방 보조가 음식을 만들면 족집게처럼 집어내는 분들도 있지요. 그럴 때는 '죄송하다'고 사과한 뒤 사정을 설명하죠. 우리가 추구하는 가격대는 1~2만원대다. 여기서 호텔급 서비스까지 해드리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요. 지금은 60%의 손님만 만족시키면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김밥집에 도전한다면 어떤 아이템으로 승부를 걸 건가요?
"누드 김밥이 히트한 건 일종의 발상의 전환이었잖아요. 저 같으면 김 대신 다른 걸로 밥을 싸보는 걸 연구해볼 것 같아요. 건강에 유익한 다시마도 좋고, 베이컨을 살짝 구워서 싸도 괜찮을 것 같고요. 뭐든 나만의 아이덴티티(정체성)가 중요한 거죠."
-레스토랑과 바에 왜 이름을 걸지 않았나요?
"원래 그런 걸 싫어했고, 손님이 가게에 왔다가 제가 없으면 일종의 배신감을 느낄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음식에 대한 만족도도 떨어지겠죠. 정직하게 맛과 서비스로 승부하고 싶었어요."
-당신이 생각하는 음식 사업의 매력은 뭡니까.
"제가 연출가가 된 느낌이에요. 일단 주방과 홀이라는 세트가 있고, 식재료는 배우로 볼 수 있죠. 여기에 음악도 흐르고, 궁극적으로 그걸 먹어주고 평가해주는 손님, 즉 관객이 있잖아요. 저희 집에 발을 디딘 손님은 어떻게든 행복하게 만들어 보내자는 게 제 소박한 영업 철학이에요."
-한 수 가르쳐 달라는 연예인은 없습니까.
"프라이버시 때문에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다들 조금씩은 관심이 있어요. 이병헌 형도 나중에 도움 청하면 컨설팅을 해달라고 했고, 권상우도 제가 부럽대요. 얼굴 사장인 줄 알았는데 저희 가게 와보고 놀란 연예인이 되게 많아요. 김수현 선생님도 가족들과 함께 오셨고, 차인표·장동건·이승연·주진모도 저희집 단골이에요."
-장동건도 자주 옵니까?
"자주는 아니고 가끔 오죠. 제가 주진모와 영화 '퍼즐'을 찍었는데 알고보니까 진모와 절친이더라고요. 저는 한때 연예인들한테 우리 가게 오라는 말을 못했어요. 괜히 저랑 밥먹고 사진 찍히고 그게 인터넷에 뜨면 그분들이 오해받을까봐요. 제 성격이 좀 소심해요."
-이태원을 떠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까.
"충남 청양이 고향이지만 이곳은 저한테 제2의 고향 같은 곳이에요. 해방촌에서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35만원짜리 반지하 단칸방에 살면서 대학을 다녔고, 연극 배우로 살 때도, '남자셋 여자셋'을 찍을 때도 이곳을 떠나지 않았어요. 압구정동이나 홍대, 신사동 가로수길에서도 사업 제의를 받지만 아직은 아니에요. 제 목표는 체인 사업이 아니라 샘플 같은 레스토랑을 여러 곳 만들어 특색있게 키워보는 거예요."
-태국 레스토랑을 오픈한 계기가 있습니까.
"아워 플레이스가 6~7층을 썼는데 사람들이 1층 음식점으로 우르르 들어가는 걸 위에서 볼 때마다 괜히 억울하고 부아가 치밀었어요. 맛과 서비스 모두 우리집이 최고인데 고층이라는 이유로 외면 당하는 게 너무 속상했죠. 그러다가 해밀턴호텔 옆에 3년간 점찍어 둔 1층 가게가 급매로 나왔고, 주저없이 계약했죠. 그게 지금의 마이타이 자리예요."
-원래 그렇게 발품 팔고 눈독 들이는 걸 좋아합니까?
"저는 운전면허가 없어서 요즘도 전철, 버스를 타고 다녀요. 이동하다가 눈에 들어오는 건물이 있으면 일단 내려서 세 곳 이상의 부동산에 들어가죠. 재테크의 시작은 치밀한 전략 세우기와 발품이라고 믿어요."
-유년 시절엔 어떤 아이였나요?
"부모님이 시장에서 포목점을 하셨는데 그곳이 제 놀이터였죠. 비단 파는 부모님 덕분에 색감도 익혔고 어물전, 과일집, 그릇집이 제게 이런저런 영감을 줬어요. 모두 레스토랑과 밀접한 곳이잖아요."
-주방장과의 갈등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장이 많던데요.
"정말 쉽지 않아요.(웃음) 제가 직원들한테 엄청 무섭게 굴어서 별명이 '지랄 사장'이거든요. 저는 나이, 경력 그런 거 안 따져요. 일종의 파격 인사라고 할 수 있는데 얼마 전 경력 1년6개월된 24세 직원을 매니저로 승격시켰어요. 레스토랑 오너가 되고 싶어서 중국집 철가방부터 시작한 친구인데 그 열정이 너무 좋아 보였거든요."
-그동안 돈은 많이 벌었나요?
"모을 때마다 새 가게를 열어서 유동성은 부족해요.(웃음) 과연 돈을 얼마나 벌어야 행복해질까 고민 많이 해봤어요. 결론은 '끝이 없다'는 거예요. 저는 이 일이 좋아서 하는 거예요. 만약 돈이 목적이었다면 나이트클럽 DJ를 해야죠."
-영업 끝난 뒤 돈 세는 재미가 좋죠?
"저는 돈 안 만져요. 누나도 있지만 대개 직원들한테 맡기는 편이죠. 주방과 홀이 마음만 먹으면 가게 돈 얼마씩은 빼 쓸 수 있거든요. 하지만 일만 잘하면 얼마든지 눈감아 줄 용의가 있어요. 누나 권유로 겸사겸사 해서 CCTV를 설치했지만 지금까지 한번도 녹화 테이프를 본 적이 없어요."
홍석천에게는 두 명의 누나가 있다. 얼마 전에는 이혼한 누나의 두 자녀를 홍석천이 입양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혼한 전 매형의 친권 행사를 염두에 둔 입양이었다. 며칠 전 중학생과 초등학생인 두 조카의 성을 홍씨로 바꾸는 신청을 했다고 한다.
-조카들이 자녀가 된 건데 책임감이 크겠어요?
"힘들어도 그 녀석들을 보면 전투력이 샘솟죠.(웃음) 부모님과 누나들은 저만 보면 입버릇처럼 미안하대요. 가족끼리 고마운 건 몰라도 미안한 건 없는 거죠."
-외식사업에 치중하다 보면 본업에는 소홀해지지 않을까요?
"안 그래요. 요즘 드라마 활동이 뜸해서 그렇지 활동 시작하면 또 그쪽에 올인 해야죠. 저는 공항에서 직업을 쓸 때도 항상 '액터(배우)'라고 써요. 외식 사업은 어디까지나 제 세컨드 잡(Second Job)이에요."
-생각중인 활동 계획이 있나요?
"무대로 돌아가고 싶어요. 올 가을 쯤 막을 올릴 소극장 뮤지컬 한 편을 기획하고 있는데 무조건 대박날 아이템이에요.(웃음) 커밍아웃한 유명 가수가 매니저의 강압으로 자서전 대필 작가와 기막힌 동거를 한다는 내용이거든요. 게이와 스트레이트 두 사람의 소통을 유쾌하게 다뤄볼 겁니다. 제가 출연할 건 아니고 극작과 연출에는 도전해볼 생각이에요."
-연기자 홍석천의 인생을 경부선에 비유한다면 지금 어디쯤 통과하고 있을까요?
"대전을 지나 영동쯤 가고 있을 것 같아요. 갈 길은 멀지만 느낌으로는 절반까지는 온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해도 기특한 일은 뭐가 있을까요?
"별건 아니지만 휴대전화 번호를 10년 넘게 쓰고 있어요. 웬만하면 010으로 안 바꾸려고요. 저와 만난 수많은 인연들이 곳곳에 있을 텐데 그들 중 누군가 문득 제게 전화할 수 있잖아요. 바뀐 번호로 자동 연결된다지만 그런 건 내키지 않아요.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이병헌 형도 저랑 똑같더라고요. 뮤지컬 '코러스라인'에 같이 출연할 때 받은 번호를 지금도 쓰더라고요."
-이병헌씨와 잊지 못할 추억 같은 게 있나요?
"'코러스라인' 때 제가 무대에서 커밍아웃하는 연기를 했는데 그때마다 눈물을 흘리니까 병헌이 형이 '네 마음 다 안다'는 표정으로 저를 포옹한 뒤 다독여줬어요. 그때 커밍아웃하기 훨씬 전이었는데 병헌이 형은 일찌감치 제 성적 정체성을 눈치 채고 있었던 거죠. 그 다음부터는 형을 대하는 게 편해졌어요."
김범석 기자 [kbs@joongang.co.kr]
사진=김민규 기자 [mg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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